PAPERYIDEUM, 2019 Spring
‘선하게 산다는 것은 너에게 어떤 것인가.’
조각하는 이탈리아 친구가 물었다. 대답했다.
‘조금 불편한 것이다.’
사람들 간의 다툼도, 정치나 스포츠, 신앙, 심지어 선하거나 악한 것에도 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로 인해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우습기까지 했다. 사실, 그런 것들에 대해 일종의 염세주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친구가 물었을 때, 조금 불편하다고 한 대답은 그래서 나름 진실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가끔은 배려하고, 좋은 소리 들으며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약간의 불편함’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악하게 산다는 것은 더 큰 불편함일 지도 모른다. 고립을 견뎌야 하고,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가끔은 목숨을 버려야 할 테니까.
자란 환경 탓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릴 때부터 나무를 좋아했다. 나무는 내게 언제나 친구였고 놀이터였다.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면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든 것이 경이로운 어린 나이에 화려한 꽃이 눈을 사로잡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긴 시간을 살아가는 나무에 비해 짧은 생명의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부러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뿔리아주(Puglia)에서 전시할 수천 년 된 올리브나무들을 촬영하며 그 친구의 질문을 생각했다. 선악의 개념 없이도 조화롭게, 모두를 위해 저리 유익하게 사는 나무도 있는데 나는, 그리고 인간은...
카메라를 들고 나무를 대할 때마다 저들처럼 욕심을 버리자고, 무심해지자고, 나무가 바람을 떠나보내듯이 그렇게 모든 것 흘려 버리자고 다짐을 한다. 때때로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사진을 찍는 내 모습, 멋진 나무를 만나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깨닫는다. 나무 사진을 찍는 것 또한 나무를 소유하려는 또 다른 나의 욕심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무리 나무를 닮으려 해도 나는 뭔가를 향해 부단히 움직여 가야 하는 한낮 동물일 뿐인데.
사진 찍으며 나무들에게 질문한다.
‘나무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저 조금 불편한 것인가?’
이흥렬
사진가(Photographic Artist)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예술과 자연이 함께하는 ‘예술의 숲’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