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다솜 기자
승인 2021.04.04 03:49
인터뷰 | 이흥렬 사진작가 인터뷰
오늘(5일) 식목일을 기념하고자 나무의 소중함을 알리는 행사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나무’는 환경 보존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면서도 그 자체로 우직하고 신비로운 모습을 갖춘 덕에 예술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대학신문』은 나무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진을 찍는 이흥렬 작가를 만나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나무를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때 광고 사진을 전공했지만, 항상 예술 사진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하게 사진을찍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나무 사진이 굉장히 많았다. 좋은 나무를만나면 사진을 찍고, 떠나지 못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시골에서 자라며 나무 아래서 종일 논 적도있고, 나무에 대한 애정이 많아 나무가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 때 할머니 그림이 걸려있던 마을 어귀의 서낭당 신목(神木)을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이 갖다 놓은 음식을 먹거나 동전을 훔쳐 과자를 사 먹기도했다. 이후에 나무를 보면 그 할머니를 닮은 여성의 얼굴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유학 생활을 할 때 한 공원에서 그 신목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나무를 발견했다. 그로테스크한 멋이 있던 한학생을 소개받아 그분과 나무를 각각 찍은 후 합성 작업을 거쳐 ‘겨울’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무를 보며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계속해서 나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Q.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찍었는데, 본인만의 촬영 방식이 있는지?
서울에 있는 나무와 남해안에 있는 나무가 다른 것처럼,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나무도 많이 다르다. 예전에『어린 왕자』를 처음 읽으면서 삽화로 그려진 바오밥나무를 보고, 별을 덮어버릴 정도로 큰 나무가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끼곤 했다. 실제로 아프리카에 갔을 때 바오밥나무를 보며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를 사진에 담아내고자 했다. 내가 찍을 나무에 대한 사전 조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무를 볼 때 느껴지는 첫인상이다. 그 첫 느낌이 사진에 담기는 메시지를 결정하기에, 내가 사진을 통해서 말하려고 했던 이야기와 결과적으로전혀 다른 이야기가 작품에 담기기도 한다.
나는 주로 밤에 사진을 찍는다. 무대의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돋보이는 것처럼 나무에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이용해 조명을 비춘 후 사진을 찍는다. 나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나무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면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리라는 생각에 최소 10년은 이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른 이야기를 사진에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Q. 〈한국의 섬 나무〉 시리즈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게 됐나. 신목을 찍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촬영하는 나무 중에는 마을의 보호수가 많다. 대체로 오래된 나무들이다.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나무를 통해 화합하고 유대감을 다진다. 나무가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보호수에는 이처럼신성한 의미가 내포돼 있어 ‘신목’이라는 좋은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 〈한국의 섬 나무〉 시리즈는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 중 『신안』 편을 쓴 섬연구소 강제윤 소장이 “섬에 있는 나무도 찍어보면 어떻겠냐”라며 책을 보내줘 시작하게 됐다. 5월 초에 〈제주신목〉과 <통영신목> 전시가 끝나면 신안에서 한두 달 기거하며 신안 신목을 찍을 계획이다.
Q. 이번 전시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섬 나무를 찍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전시마다 작품으로 등장하는 나무가 다른 만큼 사진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제주신목〉 전시를 준비하면서 찍은 제주도의 팽나무는 10년 전 처음 만난 이후 매년 두어 번씩 가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좋아했다. 제주도의 상징인 팽나무 중에 바닷바람이 세서 한쪽으로만 자라는 편향수(偏向樹)를 처음 봤는데, 나무가 제주도를 닮았다고 느꼈다. 제주도는 옛날 육지에 의해 수탈을 당한 땅이다. 제주 4·3 사건처럼 비극적인 일이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방문하기를 원하고, 예술가들도 많이 거주하는 마치 지상 낙원과같은 곳이 됐다. 그곳에 있던 편향수 역시 거센 바람 탓에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만 제주처럼, 그리고 제주 사람들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웠다.
제주도 사람들은 팽나무를 ‘폭낭’이라고 부른다. 팽나무 열매를 ‘폭’이라고 하는데, 폭이 열리는 나무라고 해서 폭낭이라고 불리게 된 듯하다. 어느 날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본 어떤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서 300명이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무는 이렇게 모든 역사를 목격하면서 사람들이 삶을 살아온 방식과 터전을 기록해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존에 많이 썼던 푸른색뿐 아니라 노란색도 작품에 사용해, 나무에 얽힌비극적인 역사와 희망을 동시에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Q. 앞으로의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
내가 하는 사진 작업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 나무가 조화롭게 어울려서 숲을 이뤄가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투고 서두르지 말고 느리지만 좀 더 식물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소망에서 출발해최근에는 ‘예술의 숲’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전에 운영해 온 예술인 협동조합을 예술의 숲 협동조합으로 만들어 숲의 일부를 작게 개발해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함께 자연을 누릴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흥렬 작가는 “삶이 힘들 때마다 숲으로 향하거나 나무를 찍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라며 “나무가 그 자리에 수백 년을 홀로 서 있던 것처럼,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인간도 본래 혼자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고절망을 이겨낼 힘을 얻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작가의 〈한국의 섬 나무〉 시리즈 중 〈제주신목〉은 다음 달3일부터 15일까지 합정역 ‘리서울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5월의 따스한 봄날, 이흥렬 작가의 나무 사진을 보면서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삶을 지탱할 힘을 얻어가는 것은 어떨까.
인물 사진: 김가연 기자 *자세한 기사: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4